월간 훈노트 Volume 6

새벽 5시의 출근

요즘은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조금이라도 일찍 출근해 오후 네 시쯤 퇴근하기 위해서다. 그래야 아내와 함께 아기를 보고, 가족과 저녁을 보낼 수 있다.

출산 이후 내가 육아에 참여할 수 있도록 근무 시간을 배려해준 팀에는 고마운 마음이 크다. 그 배려가 없었다면 지금보다 훨씬 많은 시간을 아내 혼자 감당해야 했을 것이다.

나도 나름대로 새로운 생활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다시 출근했고, 개발에 관해 고민하고 글도 쓰기 시작했다. 이전과 비슷하게 생활하고 있다는 감각도 조금씩 생겼다. 어느 정도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생각했다.

돌이켜보면 내가 일상으로 돌아왔다고 판단한 기준은 다시 일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나만의 이야기였다.

잠들지 못하는 밤

아내는 원래 내가 퇴근하기를 기다렸다가 그날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는 걸 좋아한다. 주말이면 하루 종일 함께 수다를 떨어도 모자랄 정도다. 그렇지만 7월에는 내가 아기를 보는 동안 별말 없이 앉아 쉬는 날이 많았다.

아내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고 온몸이 아프다고 했다. 팔다리가 저리고, 어떤 곳은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는다고도 했다. 무언가를 먹으면 속이 좋지 않아 전날 사다 둔 샌드위치 하나로 하루를 보낸 날도 종종 있었다.

멀쩡한 배를 갈라 사람 하나를 세상에 데려오고, 온종일 그 사람을 먹이고 재우는 일이 몸과 마음에 얼마나 큰 부담을 주는지 나는 잘 알지 못한다. 옆에서 보고 있으면서도 아내가 겪는 어려움을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다. 어떻게든 더 도와주고 싶지만, 마음이 있다고 해서 현실이 곧바로 나아지는 것도 아니다.

밤이 되면 그 현실은 더 선명해진다. 아기는 보통 저녁 일곱 시쯤 잠자리에 들어 한 시간 정도 울다가 잠든다. 그러다 자정에서 새벽 한 시 사이에 다시 깨어나고, 한번 깨면 새벽 세 시나 네 시까지 울 때가 많다.

안아보고, 자세를 바꿔보고, 집 안을 걸어 다니면서 어떻게든 달래본다. 그래도 울음은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조용히 우는 정도가 아니라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몇 시간씩 이어지면 나도 짜증이 난다. 왜 우는지 알 수 없고 무엇을 더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진정하는 것 같다가도 일부러 다시 울기 위해 노력하는 건가 싶을 때도 있다. 그저 빨리 그쳤으면 좋겠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 순간도 있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면 땅콩이는 매번 다가와 무슨 일인지 확인한다. 걱정이라도 하는 것처럼 아기와 우리를 번갈아 살핀다.

양주로 이사한 데에는 땅콩이가 편하게 지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쌍문동에서 살 때는 오토바이 소음 때문에 땅콩이가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았고 털도 많이 빠졌다. 아기가 태어나기 전까지는 자연스럽게 땅콩이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일이 많았다.

이제 집에는 오토바이 소리 대신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린다. 땅콩이가 이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즘 다시 털이 많이 빠지고 있다.

아내도, 땅콩이도, 나도 저마다의 방식으로 달라진 생활을 지나고 있었다. 나만 먼저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압빱빠

그런데 퇴근하고 아기와 다시 만나면, 아기는 나를 보고 압빱빠 하고 소리를 낸다. 눈이 마주치면 꺄악 소리를 지르며 자지러지듯 웃고, 아직 제대로 기지도 못하면서 내 쪽으로 오겠다고 팔다리를 바삐 움직인다. 그러다 꽈당 넘어지고 여기저기 부딪히면서도 다시 몸을 일으켜 기어온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쁘다. 나를 알아보고 온몸으로 반겨주는 것도, 마음만 앞서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으로 어떻게든 내게 오려고 하는 것도 모두 감사하다. 그래서 요즘은 아기와 보내는 저녁을 놓치고 싶지 않다.

내 기억 속 아기는 아직 겨우 몸을 뒤집고, 고개를 들기 위해 온몸에 힘을 주던 모습에 머물러 있다. 옹알이라고 해봐야 오고고고 같은 소리만 내던 아기가 어느새 나를 알아보고 웃으며 다가온다. 매일 곁에서 보고 있었는데도 그사이에 이렇게 자랐다는 사실이 신기하고, 조금은 미안하다.

밤에는 그만 좀 울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낮에 나를 향해 기어오는 아기를 보면 같은 울음을 조금 다르게 생각하게 된다. 내가 울음이 그치기만을 기다리는 동안에도 아기는 자기 몸을 익히고, 세상을 알아가고,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너도 사람이 되어가느라 많이 힘들구나.

그렇게 생각한다고 갑자기 다정한 아빠가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날 새벽에도 울음이 계속되면 또 짜증이 날 것이다. 다만 이제는 아기가 나를 힘들게 한다고만 생각하지 않는다. 나도 잠들지 못해 힘들지만, 아기 역시 처음 살아보는 하루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하면 조금은 더 안쓰러운 마음으로 안아줄 수 있다.

블로그 챌린지

가족과 저녁을 보내고 밤에는 아기를 달래다가 나도 잠에 든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나면 잘 수 있는 시간은 다섯 시간 남짓이다. 업무가 끝난 뒤 공부하거나 글을 쓸 시간이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다른 일을 끼워 넣을 틈이 거의 남지 않는다.

그런데도 하고 싶은 일은 오히려 많아졌다.

7월에는 일주일에 한 편씩 글을 쓰는 블로그 챌린지에 참여했다. 단순히 기술을 소개하거나 라이브러리의 공식 문서를 옮겨 적는 글은 쓰고 싶지 않았다. 내가 실제로 고민한 문제와 그 과정에서 얻은 생각이 담긴 글을 쓰고 싶었다.

쓸 것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업무를 하다 보면 이상하다고 느끼는 지점도 있었고, 더 깊이 생각해보고 싶은 문제도 생겼다. 다만 막연한 생각을 하나의 주장으로 만들려면 오래 붙들고 있어야 했다. 무엇을 쓸지 고르는 데도 시간이 필요했고, 내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지 스스로 확인하는 데도 시간이 들었다.

주 1회라는 간격은 생각보다 짧았다. 문제를 해결하는 것과 그 경험에서 내 생각을 발견해 글로 정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은 생각보다 금방 만들어지지 않았다.

설계를 더 잘하고 싶다

글쓰기만큼이나 시간을 들여 더 잘해보고 싶은 일이 있다. 요즘 개발자로서 가장 관심이 가는 것은 의미 있는 설계를 하는 일이다.

전에는 기능이 동작하고 필요한 뷰모델을 만들어 화면에 표현할 수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지금은 무엇을 고려해야 하는지,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지, 서로 다른 개념의 경계를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를 더 많이 고민한다.

아직은 이런 판단을 잘하지 못한다. 다른 사람이 작성한 코드를 리뷰할 때는 무엇이 이상한지 보이는데, 내가 처음부터 설계할 때는 같은 문제를 놓친다. 리뷰할 때는 보이는데 왜 내가 만들 때는 보이지 않을까.

사이드 프로젝트로 시도하고 있는 Agent Engineering에서도 비슷한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다. 나는 그동안 대략 무엇을 만들지 정하고 필요한 사용자 경험과 몇 가지 개념만 맞으면, 나머지는 머릿속에서 판단하며 개발해왔다. 하지만 에이전트와 함께 개발하려면 왜 이런 구조를 선택했는지,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어떤 선택지를 왜 제외했는지까지 모두 밖으로 꺼내야 한다.

막상 해보니 문제는 문서의 양이 아니었다. 에이전트가 이해하지 못한 게 아니라, 내가 설명할 수 있을 만큼 판단을 끝내지 않은 경우도 많았다.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식별하고 판단의 근거를 설명하는 과정이, 어쩌면 내가 부족하다고 느끼던 설계 역량을 연습하는 일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가능성을 발견하는 것과 실제로 시간을 내어 해보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놓치고 싶지 않은 것들

가족을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 아내가 조금이라도 더 쉬었으면 좋겠고, 빠르게 자라는 아기와 보내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다. 땅콩이도 다시 편안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개발자로서 더 깊이 고민하고 싶고, 내 생각이 담긴 글도 계속 쓰고 싶다.

잘하고 싶은 일은 많아졌는데 하루의 길이는 그대로다. 어느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고 말할 수 없어서 매일 그사이에서 할 수 있는 만큼만 움직이고 있다.

돌아보면 7월에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아기는 여전히 새벽에 깨서 울고, 땅콩이는 울음소리가 들리면 다가와 확인한다. 아내와 나는 여전히 하루를 나누어 아기를 돌보고 있다. 블로그에 무엇을 쓸지는 매주 고민하고 있고, 더 나은 설계를 하고 싶다는 마음만큼 시간을 내지도 못하고 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 생활을 바라보는 내 시선일 것이다. 내가 다시 출근하고 이전처럼 생각할 수 있게 됐다는 이유만으로 가족도 제자리를 찾았다고 생각하지 않게 됐다. 내가 일상으로 돌아가는 일과 우리가 함께 새로운 일상을 만드는 일은 서로 다른 일이었다.

7월은 무언가를 해결한 달이라기보다, 우리 모두가 아직 지나가는 중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아차린 달이었다.

우리 집은 아직 적응하는 중이다.